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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박문수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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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화

1691년(숙종 17)∼1756년(영조 3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보(成甫), 호는 기은(耆隱). 이조판서 장원(長遠)의 증손이며, 세마(洗馬) 선(銑)의 손자이고, 영은군(靈恩君) 항한(恒漢)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공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진위현 향교동에서 태어나 5세때까지 유년기 시절을 보내면서 학문을 배웠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로 뽑혔고,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設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영조 즉위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 되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자 사서(司書)에 등용되었으며, 영남암행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했고,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사로도순문사(四路都巡問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 전공을 세워 경상도관찰사에 발탁되었으며,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같은 해에 도당록(都堂錄)에 들었다. 1730년 대사성·대사간·도승지를 역임하였으며, 충청도에 암행어사로 나아가 기민(饑民)의 구제에 힘썼다. 1732년에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이 되었고, 1734년에는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에 진주사(陳奏使)의 부사(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1737년에는 도승지를 역임한 뒤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병조 자체내의 인신(印信)이 없어 군무의 신속한 입송(入送)에 불편을 줄뿐 아니라 중간에 간리(奸吏)가 농간을 부리는 폐단은 군기의 중요성에 비추어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음을 들어 병조판서의 인신과 이군색(二軍色)의 인신을 만들어 줄 것을 주청하여 이를 성사시켰다. 이듬해 다시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나 앞서 안동서원을 철폐시킨 일로 탄핵을 받아 풍덕부사로 좌천당하였다. 1739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었고, 1741년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역임하였으며, 함경도에 진휼사(賑恤使)로 나아가 경상도의 곡식 1만섬을 실어다 기민을 구제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다음해 병조판서로 재직시 지리적 여건으로 봉군(烽軍)의 충원이 어려운 북도(北道)에 각 지방에 정배(定配)된 봉무사(烽武士)로서 변통할 것을 주청하여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743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이듬해 황해도수군절도사로 좌천되었다. 1745년 어영대장에 재임되었으며, 1749년 호조판서로 재직 시 국가에서 대내(大內)의 당우(堂宇)를 3년에 한 번씩 수리할 때 책임관으로서 역대 어느 관료보다도 일을 잘 처리했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남기기도 하였다. 1750년 수어사(守禦使)를 역임한 뒤 영남균세사(嶺南均稅使)를 거쳐,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판의금부사(判義禁府使)·세손사부(世孫師傅)등을 지냈고, 1751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1752년 왕세손이 죽자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로 책임을 추궁당해 제주에 안치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우참찬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정치적으로 소론에 속하였으며, 영조대의 탕평책(蕩平策)이 실시될 때 명문벌열(名門閥閱) 중심의 인사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고, 4색(四色)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의 실(實)을 강조하였다. 특히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논의에 중요한 몫을 다하였다. 1749년에는 영조에게 주청하여 다른 신하들과 함께 『탁지정례 度支定例』를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각전각궁공상정례 各殿各宮供上定例』 6권, 『국혼정례 國婚定例』 2권, 『각사정례 各司定例』 12권, 『상방정례 上方定例』 3권을 합한 것이다. 글씨로는 안성의 『오명항토적송공비 吳命恒討賊頌功碑』가 전한다. 문헌설화는 『기문총화』 2편, 『계서야담 溪西野談』 1편, 『청구야담 靑丘野談』 3편, 『선언편 選言篇』 2편, 『동야휘집 東野彙集』 2편, 『대동기문 大東奇聞』, 『실사총담 實事叢談』 등에 전하며 한편 구전설화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면서 자료도 풍부하고 유형도 다양하며, 그가 암행어사로 활약했던 행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또 조선후기 작가미상의 한글 소설 박문수전이라는 소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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