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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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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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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면적인구세대수
63리 265개반 28.53㎢ 44,039명 (남 22,487명, 여 21,552명) 17,742세대

교육시설

초등학교 4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3개교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 경로당 46개소 ☞ 세부현황[클릭]
  • 서부노인복지관 1개소 
  • 안중청소년문화의집 1개소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안중읍의 조직도는 안중읍 하위로  총무팀, 생활지원팀, 민원팀, 산업환경팀, 개발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각 종 제증명 발급(주민등록 등초본, 세대열람, 인감, 가족관계등록부, 제적등본, 지적도, 토지대장)
  • 전입신고
  • 주민등록 재등록 및 거주불명등록
  • 주민등록증 분실신고 및 발급
  • 출생, 사망, 혼인, 이혼, 개명, 신고 접수
  • 어디서나민원처리 접수
  •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상담, 신청 및 수급자증명서 발급
  • 위기가정무한돌봄사업 신청
  •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 신청
  • 저소득 아동보육료 및 양육수당 지원
  • 저소득한부모가정 신청 및 한부모가정 증명서 발급
  • 차상위의료급여 및 차상위장애수당 신청
  • 장애인등록 신청 및 장애인자동차표지스티커 신청
  • 장애인고속도로통행료 할인카드 신청
  • 장애인증명서 발급
  • 기초연금 신청
  • 의료급여대상자 증명서 발급 및 청소년증 발급 신청
  • 안중공설공원묘지 관리 및 묘지개장,매장 신고
  •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 신청
  • 경로당 등록 및 지원
  • 농업인 양육비 및 학자금 지원신청
  • 쌀소득등보전직불급 신청
  • 농림사업 신청 및 청소관리
  • 건축물멸실신고 및 옥외광고물 신고
  • 민방위교육 및 보안등 관리
  • 지방세납세증명서(지방세완납증명서)
  • 세목별과세증명서(재산세, 자동차세 등)
  • 미과세증명서 발급
  • 기타 시정업무(문의사항 ☏ 031-8024-8001)

안중읍 유래

1987년 7월 1일 평택군 조례 제 1130호(87.6.29 공시)로 군과 면의 사무를 효율적으로 분장 수행하고 주민의 행정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오성면 금곡리 안중리 학현리 대반리 삼정리와 청북읍 덕우리 용성리 포승면 석정리 일부 현덕면 화양리 일부 및 인광리 업무를 분리하여 평택군 안중출장소를 개설 행정기관으로서 발족을 하였음. 그 당시 안중리 마을회관을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였으나 1988년 12월 20일 청사를 준공하였으며, 평택군 조례 제1220호(89. 3. 31 공시)로 평택시 안중출장소가 안중면으로 승격되었고 군조례 제 1222호(89. 3. 31 공시)로 3개 법정리(성해리 현화리 송담리)를 신설하여 행정면으로써의 면모를 갖추었음. 이어서 2002. 5. 1일 평택시에 읍 설치 요청을 하고 동년 5월 22일 경기도에 요청 동년 8월 10일에 행자부에 요청 동년 9월 23일 행자부에서 읍 설치 승인이 되었으며, 동년 10월 31일 평택시 조례공포 제583호로 안중읍으로 승격되었고, 동년 11월 5일 안중읍 승격 및 출범을 시작하였음.

안중리(安仲里)

안중리는 조선시대 직산현 안중면 지역이다. 본래는 재빼기·길마골이라 했는데 조선 말 현덕면 황산1리 상안중에 있던 안중장터가 옮겨오면서 안중장으로 부르게 됐다. 1895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수원군에 속했고, 1914년 황금리를 통합해 진위군 오성면 안중리로 편제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분할되면서 안중면 안중리가 됐다. 서평택지역의 정치·행정·금융·상업·교육의 중심지이고 2002년 안중읍으로 승격했다. 현재 안중읍 행정복지센터·우체국·농협·각종 학교가 밀집됐으며 재래상업의 중심지다.

금곡리(金谷里)

고려시대에는 용성현 지역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수원도호부 오정면에 속했다. 1914년 금곡·임촌·관두리·청룡면 강길리 일부를 통합해 금곡리라고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안중면 금곡리가 됐다.

대반리(大盤里)

대반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오정면과 직산현 언리면 지역이었다. 1914년 대반촌·소반촌·용촌·신촌과 직산군 안중면의 송담리 일부를 통합해 대반리라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평택군 안중면 대반리가 됐다. 자연마을로는 소반촌(1리, 작은반바위)·대반촌(2리, 큰반바위)·창말(3리)·용머리(4리)·신촌(5리), 그리고 1995년 분동된 직산말(6리)이 있다. ‘대반’이라는 지명은 대반1리와 2리의 자연지명인 반바위(밤바위)에서 왔다. 반바위는 대반1리의 큰 너럭바위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학현리(鶴峴里)

학현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오정면과 현암면, 포내면의 경계였다. 1914년 오정면 율리와 현암면 언성리 일부, 포내면 학현리를 통합해 진위군 오성면 학현리라고 했다. 학현이라는 지명은 학현2리 원학현의 자연지명인 ‘하오개’에서 왔다. 하오개는 학고개의 사투리이며 한자로 표기한 것이 ‘학현鶴峴’이다. 자연마을은 율리·원학현·북덕말이 있다

삼정리(三井里)

조선시대 삼정리는 수원도호부 지역이었다. 1895년 수원군 오정면으로 개편됐으며, 1914년 오정면이 숙성면과 통합되면서 대삼정·중삼정·외삼정을 포함해 오성면 삼정리로 편제됐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안중면(읍) 삼정리가 됐다.

용성리(龍城里)

삼국시대 고구려가 지배할 때는 상홀현 또는 거홀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거성현車城縣의 영역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용성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수주(수원)의 속현屬縣이 됐으며, 조선건국 후 용성현이 폐현廢縣되면서 수원도호부 청룡면으로 편제됐고 설창設倉이 설치됐다. 1895년 근대적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수원군 청룡면으로 개편됐다가, 1914년 강길·설창·숙성면 대죽동 일부와 통합돼 청북면 용성리라고 했다. 1987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면서 안중면 용성리가 됐다. 자연마을로는 청룡(1리)·강길(2리)·설창(3리)가 있고, 강길마을 앞에는 오뚜기식품(주) 평택공장이 있다.

덕우리(德佑里)

덕우리는 고려시대 용성현 지역이었고, 조선시대 수원부 청룡면이 됐다. 본래는 덕좌리, 덕우리로 부르다가 1914년 수촌리를 통합해 진위군 청북면 덕우리라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하면서 안중면 덕우리가 됐다. 두 마을 다 약 3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전한다.

성해리(城海里)

성해리는 갑오개혁 뒤 수원군이었고, 1914년 진위군 포승면 석정리에 통합됐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독립되면서 성외(밖)와 해조마을이 분동돼 성해 리가 됐다. 성해리의 자연마을로는 성외(1리)와 해조(2리)가 있다. 성해1리 성외의 자연지 명은 ‘성바께’로 석정리 장성의 바깥쪽에 있어 유래됐다. 분동되기 전에는 23호에 불과했다. 마을은 능선주위에 넓게 흩어졌으며 주로 밭농사와 논농사로 생계를 이었다. 1990년 대 이후 석정리 방면으로 석정빌라가 들어서고 국도 38호선 길옆에 상가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세대 수가 증가했다.

송담리(松潭里)

송담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현암면 지역이었다. 1895년 수원군이 됐고, 1914년 버들미·점촌과 함께 진위군 현덕면 인광리가 됐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설치되면서 안중면 송담리로 분동됐다. 송담리는 1990년대 중반 수정골에 신창아파트가 건설되고, 현화지구택지개발로 이주한 화양리 주민들과 포승국가공단 건설로 집단 이주한 만호리 사람들이 집단이주단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2012∼2013년 송담1리가 송담택지개발지구 안에 포함되면서 폐동됐다. 송담이라는 지명은 송담1리 소루무지에서 유래됐다. 소루무지는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의 지형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은 소두각골·구억말·신창아파트·새동네가 있다.

현화리(玄華里)

현화리는 현화택지지구개발로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조선시대 수원 도호부에 속했고 일부는 충청도 직산현 지역이었다. 1990년대 중반 현화택지지구가 조성되면서, 학현리의 ‘현’과 화양리의 ‘화’에서 한 글자씩 빌려 현화리라고 해 안중읍에 편입시켰다. 현화리에는 현덕면 화양리의 20여 개 자연 마을이 있었는데 22개의 행정리로 편제했다. 대체로 1리에서 6리까지는 현덕면 화양리에 속했던 기존의 자연마을이고 7리는 기존의 동환아파트이며, 8리에서 22리 까지는 택지지구개발로 새로 건축된 아파트단지다. 자연마을로는 1리(행궁이)·2리(무지개, 구두물)·5리(긴등)·6리(전원마을)과 안중읍내와 연결됐던 3리와 4리가 있다. 자연마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마을은 행궁이·무지개·구루물·긴등이고, 전원마을은 1990년 이후 포승읍 원정리에 해군제2함대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원정6리와 7리 주민들이 이주해 건설했다. 현화리는 현화택지지구 조성사업 뒤 교육·문화·상업시설이 밀집해 현재 안중읍의 가장 번화한 곳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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