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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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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면적인구세대수
62리 189반 61.15㎢ 24,650명 (남 14,486명, 여 10,164명) 12,793세대

교육시설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포승읍의 조직도는 포승읍 하위로  총무팀, 생활지원팀, 민원팀, 산업환경팀, 개발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포승읍 유래

우리 포승읍은 내기리 도곡리 원정리 만호리 희곡리 신영리 방림리 석정리 홍원리 등 9개 법정리 행정을 담당하는 64개의 마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업을 기반으로 평택항, 서해안 고속도로, 국가공단 등 주요산업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서해안개발의 요충지역이다.

포승읍

양성현에서 분리하여 수원군에 병합되어 구한말까지 소속 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포내면(浦內面)과 승양면(升陽面)의 대부분 안외면(安外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포내면의 포(浦)자와 승양면의 승(升)자를 따서 포승면으로 부르게 되었고 인구의 증가와 도시화의 진전으로2006년 12월 29일 포승읍으로 승격 되었다.

내기리(內基里)

약 680년 전에 함평 이씨 이길중이라는 학자가 이곳에 낙향하여 살기 편안한 동네라하여 안기(安基)라 했으나 이후 행정구역 개편때 한자음을 빌려 내기리로 개칭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 원주거마을인 안기(安基)마을과 두 날개를 활짝 편 학(鶴)을 탄 형상을 한 마을을 형성했다하여 지은 신대(新垈)마을, 마을 뒤편에 승배산(僧拜山)이 있어 해마다 제를 올렸다고 해 지은 재촌마을이 있으며 또한 이촌(裡村)마을은 이씨(李氏)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 이씨촌(李氏村)으로 불렸으나 이후 이촌으로 개칭해 사용했다.

도곡리(道谷里)

마을에 불당산(佛堂山)이 있어 승려들이 수도(修道)를 하였다고 불린 지명이며 자연부락으로는 마을뒷산이 쏘가리가 엎드린 모양과 같다하여 이후 변음되어 거산(巨山)마을로 되었고 진목동(眞木洞)은 주변에 참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참나무골로 부르다 행정구역 개편때 참 진(眞)자를 사용해 진목동으로 개칭되었으며 옆마을로는 당두리(堂頭里)원도곡리 (元道谷里)무수리(無愁里)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원정리(遠井里)

마을이 형성되면서 주민들의 식수를 주변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먼곳에 맑고 깨끗한 샘물을 이용했다고하여 먼물이로 부르다 행정구역 개편때 한자음으로 바꾸어 원정리라 했으며 자연부락은 원원정리(元遠井里)와 서쪽으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꼬부러진 돌다리를 비유해 꼬분이 또는 고분다리로 불리다 행정구역 개편때 곡교리(曲橋里)로 바뀌었고 번제(藩堤)마을은 국가공단이 개발중이며 대청댐 수몰지구 주민의 정착지인 원정 1, 3지구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호암리(虎岩里)는 일명 범바위골로도 통하는데 뒷산에 범모양의 바위가 있다하여 불렀으며 지금은 화력발전소와 옆으로 LNG. LPG 인수기지가 위치하고 있다.

만호리(晩湖里)

옛날에는 만포(晩浦)라는 포구가 있어 만포리(晩浦里) 라 했으나 행정구역 개편때 만포의 만(晩)자와 충청도와 가까운 지역에 있어 호서(湖西)의 호(湖)자를 따서 만호리라고 했으며 자연부락으로 서해대교가 있는 상.하만호리가 있으며 옛적에 마을에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해지은 대정리(大井里) 사원이 있었다고 전해 내려와 원기리(元基里)라 하며 연암마을은 솔개가 앉은 모양이 바위가 있다고하여 솔개바위마을 또는 연암리라고 부른다.

희곡리(希谷里)

평야지대로 산골짜기가 드물다하여 지어진 지명으로 자연부락은 원희곡리(元希谷里)와 송내리(松內里)일자촌(一字村)마을이 있다.

신영리(新榮里)

옛날에 장터가 있어 나날이 번영하라는 뜻으로 지은 지명으로 자연부락은 조선시대 직산현에 속해 지은 지명으로 직산동과 매산동, 중간촌, 가장동, 신전포 마을이 있다.

방림리(芳林里)

솔밭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해 꽃다울 방(芳) 수풀림(林)자를 사용해 불렀으며 자연부락으로 원방림리와 이평리, 옛적에 활과 화살을 만들던 곳으로 활 전(箭)자를 따서 전촌(箭村)이라 했는데 상전촌과 하전촌으로 나뉘어져 있다.

석정리(石井里)

예전에 식수우물을 찾다가 맛 좋은 물이 서편 돌에서 나왔다고하여 부른 지명으로 일명 서둔물이라고도하며 자연부락으로는 우물 맛이 시원하고 달아서 달 감(甘)자를 따서 감기리, 원석정리와 이 마을 에서 분리된 신기, 야동 마을이 있으며 밭을 개간할 때 검은 돌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현석리와 용소동이 형성되어 있다.

홍원리(洪原里)

조선시대 군마(軍馬)를 기르는 넓은 방목장과 성(城) 이 있어 넓을홍(洪) 들원(原)자를 써서 사용하고 자연부락으로는 외원(外原), 마장리(馬場里), 자오(子午)마을과 대청댐 수몰지구 주민들의 정착 마을인 1.3.4지구로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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