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뉴 열기

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 직속기관
  • 읍면동
  • 청북읍
  • 일반현황

기본현황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면적인구세대수
55리 52.56㎢ 25,551명 (남 13,457명, 여 12,094명) 10,014세대

교육시설

어린이집 32개소, 유치원 10개소,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1개교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청북면의 조직도는 청북면 하위로  총무팀, 생활지원팀, 민원팀, 산업환경팀, 개발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노인교통수당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청북읍 유래

청북읍은 현곡리, 삼계리, 고잔리, 옥길리, 후사리, 토진리, 백봉리, 어연리, 율북리, 한산리, 어소리, 고렴리 등 12개리의 법정리의 행정을 담당하는 읍장 관할구역 명칭으로서 65개의 자연마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은 이화∼삼계간 도로개설 및 현곡지방산업단지와 청북지구 택지개발을 조성하고 있는 서해안 개발의 거점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청북읍(靑北邑)의 연혁은 구한말까지 수원군(水原郡)에 소속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청룡면(靑龍面), 율북면(栗北面), 토진면(土津面)을 합쳐 청룡면의 청(靑)자와 율북면의 북(北)자를 따서 청북면으로 칭하면서 진위군(振威郡)인 현재의 평택시에 편입하게 되었다.

청북읍(靑北邑)

연혁은 구한말까지 수원군(水原郡)에 소속되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당시 청룡면(靑龍面), 율북면(栗北面), 토진면(土津面)을 합쳐 청룡면의 청(靑)자와 율북면의 북(北)자를 따서 청북면으로 칭하면서 진위군(振威郡)인 현재의 평택시에 편입하게 되었다.

현곡리(玄谷里)

가마을 건의마을이 있으며 포구(浦口)를 새로 만들어 생긴 신포(新浦)마을이 있고 광승(光升)마을은 동네 뒷산이 큰 성(成)과 같다하여 조선시대에 광성(光城)으로 불렀으나 이후 광승으로 변해 불러지고 있다.

삼계리(三溪里)

지리적으로 세갈래로 된 큰 계곡(溪谷)이 있어 그 계곡이 합류해 서해로 흐르는 지점을 나타내는 지명으로 원삼계(元三溪)마을과 예전에 마을앞에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이 있어 새우젓 독(甕器)을 매매한 곳으로 그릇 옹(甕)자를 딴 옹포(甕浦)마을이 있으며 원삼계마을에서 분리된 신촌(新村)산골에 비친 달빛이 아름답다고 불려진 월곡(月谷)마을이 있으며 신영촌(新榮村)은 해방후 이북피난민이 정착해 생긴 마을로 새롭게 번영하자는 뜻에서 지었고 성골(城谷)은 마을의 위치가 성(城)둘레의 골짜기에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고잔리(高棧里)

예전에는 서쪽이 해안(지금의 남양호)에 접하고 있어 조수가 드나드는 갯가의 고랑의 다리를 건너서 왕래하여 높은 지대라는 고(高) 다리 잔(棧)자를 사용해 고잔리라고 했으며 뒷뜰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라하여 후평(後坪), 중평(中坪), 전평(前坪)마을이 있고 원고잔(元高棧)마을에는 조선 초 훈민정음 창제에 공을 세운 신숙주(申叔舟)의 사당이 있으며 대곡(大谷)마을은 큰 골짜기에서 동네가 위치해 있다하여 지었고 혁명촌(革命村)은 이북 피난민들이 개간하여 정착한 곳으로 1961년 5.16군사혁명때 자연마을로 독립하여 부르게 되었다.

옥길리(玉吉里)

고려때부터 이곳은 조개잡이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며 조개껍질이 다양하고 아름다워 옥(玉)과 같다하여 옥같이 길(吉)하게 살겠다는 뜻이며 자연마을로는 원옥길(元玉吉)과 선비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고 해 가사(假士)마을이라 했으며 이와 함께 기산(基山)마을과 신기리(新基里)가 자리잡고 있다.

후사리(後寺里)

신라시대에 마을 뒷산에 큰 절이 있었다고하여 불리운 이름이며, 오금(梧琴)마을은 오동(梧桐)나무가 많아 자라 거문고(琴)를 만들어 생업을 유지했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릉(武陵)마을은 옛날 무사(武士)들이 무술을 연습하던 곳으로 능(陵)이 있었다고하여 전해진 지명이다.

토진리(土津里)

마을 앞까지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나루터를 상징해 일컫는데 자연마을로 원토진리(元土津里)와 동네앞까지 조수가 들어와 집터를 높게해야 한다는 뜻으로 마을을 형성한 고좌리(高座里)가 있는데 이곳은 임경업 장군이 갖다 놓았다고 하는 바위 등 임장군의 유적에 얽힌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국길리(國吉里)는 나라가 평안해야 마을이 편안하다는 뜻에서 불렀다고 한다.

백봉리(栢峰里)

예전에 잣나무숲이 울창한 봉우리가 있었다하여 불리운 지명으로 자연마을로 원백봉리(元栢峰里)와 벽동(壁洞)마을이 있으며 어연리(魚淵里)는 각종 많은 물고기가 서식한 큰 연못이 있어 부른 지명으로 고기 어(魚), 못 연(淵)자를 사용해 어연리하고 했는데 이 곳 자연 마을로는 원어연리(元魚淵里)와 황곡리(黃谷里)가 있다.

율북리(栗北里)

오래 전부터 이곳은 밤나무(栗木)가 울창해 밤의 산지가 되었던 곳으로 청북읍 소재지의 북쪽에 위치하였다하여 율북리라 하였으며 한산리(閑山里)는 옛날 이곳에는 갯가와 함께 한가로운 산이 있어 한산리라 했는데 자연마을로 원한산리(元閑山里)와 수복리(壽富里), 망포(網浦)마을이 있으며 판교리(板橋里)는 옛날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으로 마을앞 어귀에 갯고랑을 지르는 널판 쪽다리를 가설하였다하여 부른 지명이다.

어소리(魚沼里)

오래전에 큰 연못이 있어 양어(養魚)를 하였다는 연유로 불린 지명으로 원어소리(元魚沼里)와 구억(九億) 설창(設倉)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렴리(古念里)는 덕지산(德智山)을 중심으로 3개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