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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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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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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면적인구세대수
40리 46.69㎢ 5,683명 (남 3,008명, 여 2,675명) 2,911세대

교육시설

초등학교 2개교(분교 1개교 포함)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 경로당 35개소 ☞ 세부현황[클릭]
  • 면 복지관 1개소 (Tel. 031-8024-8911 / Fax. 031-8024-8929)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현덕면의 조직도는 현덕면 하위로  총무생활팀, 민원팀, 산업환경팀, 개발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노인교통수당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현덕면 유래

현덕면은 조신시대 수원군에 속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진위군으로 편입할 때 수원군 가사면 광덕면 현암면 일원과 안외면 포내면 승양면의 일부를 병합하였으며 그 중 면적이 넓은 현암면의 “현”자와 광덕면의 “덕”자를 따서 진위군 현덕면이라 개칭하였으며 1939년 10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거 평택군 현덕면이라 하였다. 현재는 12개 법정리와 40개 행정리가 있다.

권관리(權菅里)

지형이 닭의 머리를 닮아서 ‘계두(鷄頭)’라고 하던 것을 벼슬 관官을 써서 권관(權官)이라고 했다. 나중에 한자가 바뀌었다. 권관리는 상하동(1리), 고잔((2리), 문곡(3리), 가사(4리)가 있다. 상하동은 상부동과 하부동으로 나뉘어졌다가 합쳐지면서 형성된 지명이고, 고잔(高棧)은 바닷물이 들어오고 곶(串)이 발달해 유래되었다, 문곡은 ‘황새울’이라고도 한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갯벌이 발달했을 때 황새들이 날아들어 유래되었으며, 가사는 갑오개혁 뒤 수원군 가사면의 소재지에서 유래되었다.

기산리(岐山里)

기산이라는 지명은 기산3리 원기산에서 왔으며, 원기산은 남쪽으로 안성천 하류(평택호)가 바라보이고 큰길에서 깊숙이 들어가서 피난곶이라고 불렸다, 천곡은 본래 샘골이라고 불렀으며, 기산리의 샘골이라는 뜻으로 기천곡이라고 부른다, 샘골은 일제강점기만 해도 현덕면의 면소재지였다.

대안리(大安里)

마안산을 중심으로 작은박골(1리), 사랑현과 뱀골(2리) 큰박골(3리), 구진개(4리)로 형성되었고, 박골이라는 지명은 함양박씨들이 마을을 개척하여 ‘박골’이라고 했던 것을 큰박골과 작은 박골로 분동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부유해 사랑(난간)만 딛고도 건너다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사랑현, 뱀골은 본래 마을에 서당이 있어서 배움골이라고 했던 것을 소리 나는 대로 뱀골이라고도 했다. 구진은 ‘홍진(鴻津)’ 또는 갈매기가 많이 날아들어 ‘구진개’라고 했으며, 아산만 어업의 대표적인 어항이었다.

덕목리(德睦里)

소당(1리), 백석, 차돌배기(2리), 찬우물(3리), 원덕목(4리), 은곡(5리)로 형성되어 있고, 소당은‘소댕이’라고도 한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글을 현판에 걸어놓은 집이 있어 유래되었고, 백석은 옛날 날개 달린 장수가 마안산 봉우리에서 북쪽을 향해 200여 근이 넘는 차돌을 던진 것이 마을 입구에 떨어져 차돌백이라고 했는데 차돌이 박힌 곳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덕목5리의 자연마을인 은곡은 어촌공 공부가 고려가 멸망한 뒤 두문동에 은거하다가 낙향하여 숨어 살았기 때문에 유래됐다고 한다.

도대리(道垈里)

지형이 돛대와 같다고 해 ‘돛대’, ‘되떼’라고 불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도대리의 지명은 원도대에서 왔으며, 원도대는 도대리에서 제일 먼저 생긴 마을로 밀양박씨가 먼저 입향해 개척했고 300여 년 전 상주황씨가 입향 하면서 규모가 확대됐다. 실제로 마을 앞에는 돛대를 뜻하는 오래된 엄나무가 자랐고 중앙에는 큰 바위가 놓여 있어 주민들은 이를 신성하게 여긴다.

방축리(防築里)

방축은 방죽말에서 유래되었고, ‘원방축(1리)’과 ‘국리(2리)’로 나뉜다. 원방축은 마을 입구에 논방죽이 있어 ‘방죽말’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방축’이라 했다. 국리는 본래 궁리라 했지만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반란군의 기세에 깜짝 놀란 인조임금은 서둘러 공주로 피난을 나섰다. 그때 임금이 마을을 지나다가 하룻밤을 유숙하게 됐는데 그 뒤로 행궁(별궁)이 있었다고 해 궁리라고 했던 것을 나중에 음이 변해 국리가 됐다.

신왕리(新旺里)

신왕1리 신흥포(계두포)를 중심으로 안성천 하류의 어업과 수로교통이 발달했던 마을로 마두(1리) 지형이 말머리를 닮아 ‘말머리’라고 하다가 한자로 ‘마두’로 표기했다

운정리(雲井里)

지형이 구름속에 반달모양 같고 동리에 크고 좋은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둘레에 항상 안개가 서려있어 구름이 덮혀 있는듯하여 구름과 우물을 한자로 표기하여 운정이라고 했으며, 옛날 장구억이란 부자가 일꾼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노루를 잡은 이후 가세가 기울어 모두 이사해 버렸는데 마을사람들이 장구억이 살았던 곳이라 해 구억촌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인광리(仁光里)

원인광(1리)는 옛 국도 39호선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펼쳐진 이 마을은 보통은 인괭이라고 하지만,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잡고 있어 ‘양짓말’로도 불리웠고 점촌(2리)은 수공업자 마을로 이 마을은 천주교인들이 모여 옹기를 굽던 수공업자촌이다. 문화동, 뗏장거리(5리)는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의 정착촌이다. 특히 ‘뗏장거리’는 피난민들이 뗏장으로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지명으로 고단했던 피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지명이었다.

장수리(長水里)

옛날 언덕 넘어 해변가에 마을이 생겼다하여 두메라고 불러오다 두메산골 애명이 나빠 긴해변을 끼고 있는 마을을 상징으로 장수리라 개칭되었다,

화양리(華)陽里)

옛날 마을이 생기던 해에 장마가 계속되었는데 유독 이 마을 주변은 비가 심하게 오지 않고 자주 양지로 변하였다고 해서 햇볕이 잘드는 태양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화양리라 하였다고 하며, 자연마을 용골(2리)은 마을 우물에서 용이 솟아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전설이 있어 용골이라고 불리다 용동으로 변경되었다.

황산리(黃山里)

조선시대 직산현 안중창이 있던 마을로 마을 일대는 바닷물이 들어왔고 곶이 발달했었다. 조창이 발달하면서 황산1리 상안중에는 직산장이라는 장시도 형성되었으나, 직산장은 조선말 안중리로 옮겨갔다고 한다. 해방 전후에는 황산리 앞에 큰 수로가 형성되어 하안중 남서쪽 하틀까지 새우젓배 소금배가 닿았다 하며 물굽이가 형성된 바닷가 마을이라 느늘미라 하였고 지금의 황산리는 느늘미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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