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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 면적 인구 세대수
39통 267반 2.84㎢ 27,667명 (남 13,943명, 여 13,724명) 12,949세대

교육시설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서정동의 조직도는 서정동 하위로  행정민원팀, 생활지원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거주불명등록) 신고
  • 출생신고
  • 사망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기초연금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서정동 유래

서정동은 조선시대 진위현 탄현면이었고, 남쪽 일부는 양성현 소고니면이었다. 1981년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관할구역이 중앙동과 분리되며 조성되었으며, 점촌·지장동·복창동·신창동·사거리·원적봉 6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서정(西井)’

중앙동의 자연마을인 ‘서두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동령마을 서쪽에 좋은 우물이 있어 ‘서우물’, ‘섯우물’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됐다.

‘점촌(店村)’

청북고가도로에서 현재 서정동행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마을로 우리말로는 ‘점말’이다. 1920년대 초 황금석이라는 인물이 옹기가마를 만들면서 형성되었으며, 1980년대까지도 옹기가마가 남아있었으나, 1990년대를 전후해 옹기산업이 쇠퇴하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지명만 남아있다.

‘지장동(地莊洞)’

송탄출장소와 점촌 사이의 마을로, 고려시대 때 송탄출장소 부근에 지장사라는 절과 사하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조선 후기 본래 위치에서 300여 미터 아래에 절을 중건하였고, 나중에 마을도 함께 옮겨 오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마을도 1990년대 초 도시개발과 신흥 주택단지 건설로 옛 마을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장초등학교라는 이름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복창동(福昌洞)’

K-55 미군기지가 주둔하면서 청소용역을 맡은 ‘복창공사’에 다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신창동’

신장2동 밀월동과 사거리, 복창동 사이의 마을로, 황해도 피란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거주했다고 해서 ‘황해도촌’이라고도 한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군산피란민수용소에 정착했다가 1950년대 중반 송탄 황해도촌 언덕바지로 집단 이주했다. 신창동과 인접한 사거리와 복창동은 전쟁 피란민과 미군부대에 취업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이주민들이 뒤섞여 형성한 마을로, “사거리”라는 지명은 1950년대 원적봉·신장동·적봉리·서정리 방향으로 통하는 네거리가 있어 유래됐다.

원적봉(原赤峰)’

사거리에서 미군기지 후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언덕바지 마을이다. 조선 말기에는 진위군 적봉리와 신야리였다가 1914년 적봉리가 됐다. 원적봉은 본래 40여 호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으나, 1952년 K-55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 일부는 신장1동 구장터와 목천으로 이주하고 나머지는 마을 뒷산자락으로 이거하면서 원주민 마을은 사라지고, 미군기지에서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이 이거하면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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