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뉴 열기

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 직속기관
  • 읍면동
  • 송탄동
  • 일반현황

송탄동 연혁

  • 고려시대 : 영신현
  • 조선시대 : 진위현
  • 1914. : 진위군의 송장면·탄현면·일탄면·여방면 일부가 송탄면으로 통합
  • 1981.07.01. : 송탄시 동부동·도원동으로 분할 편제
  • 1995.05.10. : 평택시 동부동
  • 1996.04.19. : 평택시 동부동에서 송탄동으로 명칭 개칭
  • 1998.10.01. : 평택시 도원동의 인구감소로 동부동과 통합

기본현황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면적인구세대수
20통 94반 20.33㎢ 14,556명 (남 7,643명, 여 6,913명) 5,796세대

교육시설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교, 대학교 2개교 ☞ 세부현황[클릭]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육시설 주소 및 연락처 안내 표입니다.
명칭주소연락처
송탄초등학교 평택시 막곡길 67 (가재동) (우 17742) 전화 : 031-664-9093
팩스 : 031-664-9095
은혜중학교 평택시 장안웃길 66 (장안동) (우17731) 전화 : 031-612-1002
팩스 : 031-611-1092
은혜고등학교 평택시 장안웃길 66 (장안동) (우17731) 전화 : 031-615-2510
팩스 : 031-611-4582
국립복지대학교 평택시 삼남로 283 (장안동) (우17738) 전화 : 031-610-4600
팩스 : 031-610-4930
국제대학교 평택시 장안웃길 56 (장안동) (우17731) 전화 : 031-610-8000
팩스 : 031-668-4900

공공복지시설

  • 경로당 18개소세부현황[클릭]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공공복지시설 주소 및 연락처 안내 표입니다.
    명칭주소연락처
    모곡 평택시 모곡길 45-17 (모곡동) (우17747) 전화 031-665-0945
    칠괴 평택시 칠괴길 132 (칠괴동) (우17748) 전화 031-665-9310
    소곡 평택시 막곡길 71-7 (가재동) (우17742) 031-665-1197
    중리 평택시 중리길 33-4(가재동) -
    방혜 평택시 방혜동길 43-3 (가재동) (우17742) 전화 031-663-6005
    장안마을 평택시 장안길 80(장안동)  
    칠원 평택시 원칠원길 71-2 (칠원동) (우17726) 전화 031-666-1212
    신촌 평택시 새말로104번길 3 (칠원동) (우17726) 031-663-8733
    수촌 평택시 수촌길 49 (칠원동) (우17845)  
    원도일 평택시 원도일길 35(장안동) 031-666-7281
    하리 평택시 하리길 5 (도일동) (우 17723) 031-663-0028
    내리 평택시 원릉군길 135-3 (도일동) (우17723) 031-662-9192
    도일 평택시 도일로 164-3 (도일동) (우17724) 031-665-9192
    상리 평택시 상리길 1-75 (도일동) (우17723) 031-611-6159
    칠원동광 평택시 원칠원길 56 (칠원동, 동광아파트) (우17726) 031-664-0031
    칠괴우림필유 평택시 칠괴길 138-33 (칠괴동, 우림필유아파트) (우17748) 031-8024-1145
    가재우림필유 평택시 막곡길 11 (가재동, 우림필유아파트) (우17742) 031-668-6656
    코오롱하늘채 평택시 추담로 58-78 (장안동, 장안마을코오롱하늘채아파트) (우17731) 031-662-1943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송탄동의 조직도는 송탄동 하위로  주무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노인교통수당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송탄동 유래

모곡(茅谷)

모곡마을은 광활한 평야지대에 형성된 마을로, 옛적에 마을 앞에 도롱이(풀로 엮어 만든 비옷)의 재료가 되는 풀이 도일천변에 무성하였다 하여 띠 모(茅), 골 곡(谷)을 써서 모곡(茅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전주이씨(全州李氏) 집성촌락으로 조선 2대 정종대왕의 7대손인 왕자 수도군 이덕생의 4대손 문등부수(文登副守) 이윤(李崙)의 차남 군자감(軍資監) 이헌방(李憲邦)(1494~1540)이, 1519년 기묘사화때 관직을 버리고 조광조 선생의 유허가 있는 우리고장으로 낙향하여 정착하면서 개척된 마을이다.
마을입구에 당시 심은 향나무가 존재하여 연륜을 자랑하며, 문등부수 이윤의 사당이 있어 왔으나 공단조성으로 없어지고, 군자감공의 터(基)만 장당동 산30번지에 남아있다.

칠괴(七槐)

칠괴의 유래는 옛날 이곳에 공동 우물이 있고, 그 주변에 7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다 하고 그 나무의 신령함으로 일곱 장사가 태어나니, 자연적으로 일곱 칠(七), 느티나무 괴(槐)를 써서 칠괴(七槐)라고 불렀다 한다.
평택군지(平澤郡誌)에는 일곱 개의 느티나무 정자로 표현하여 ‘七槐亭(칠괴정)’이라 했고, ‘칠구쟁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칠괴리는 청주한씨세거지(淸州韓氏世居地)로 본래 진주소씨(晋州蘇氏)가 살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청주한씨가 막곡 앞 용단봉 부근에 정착하여 살다가, 흰치고개에 도둑이 많아 그 피해가 미치기 때문에 칠괴리로 이주하였다고 하며, 평택군지(平澤郡誌)에는 소씨의 사위가 된 한씨 문중이 점차 들어와 살면서 소씨는 쇠퇴하고, 한씨 18대가 살게 되었다고도 하는 마을이다.

막곡(幕谷)

막곡은 조선시대에 진위현 여방면에 속하던 마을로, 본래 방혜동·맹여울·방여울로 불리웠던 큰 마을을, 1950년대에 셋으로 나누어 방혜동·막곡·중리로 부르게 될 때에 생겨난 지명이다.
그러나 막곡이란 골짜기 명칭은 분리되기 전부터도 있어 왔다고 하며, 이 골짜기는 마골로도 불렸으나 일정 초기에 한자화 된 지명으로 막곡(幕谷)이라 표현하였다고 한다.
막곡의 연원은 마을 뒤편의 산(山)이 흡사 珹과 같은 형세를 보였고, 산을 넘는 고개를 성현(珹峴)이라 하였으며, 그 아랫마을이 군(軍)의 병영(兵營)과 같아 보인다하여 장막 막(幕), 골짜기 곡(谷)을 써서 막곡(幕谷)이라 한다고 전한다.
주민으로 200여년 전 풍양 조씨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기고 수성최씨, 전주이씨 등이 집성을 이루어 살고 있는 전통 마을이며, 동부동사무소가 자리하였던 지역이다.

방혜동(芳惠洞)

방혜동은 본래 방효리(芳孝里)로 여지도서에 표기되어 있는 마을로서 뱅여울로 불렸으며, 도일리와 합하여 99골짜기를 이루어 여방면을 구성하였던 곳이다.
일찍이 경주이씨 세거지가 되었던 이 마을은, 조선 중기 인물인 오제공 이탕(李宕)선생의 사당이 있어 고전적인 향토 마을의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군지(郡誌)에 의하면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뒷 산에 꽃이 아름답게 피어, 마을에 복이 있을 것이다 하여 꽃다울 방(芳), 은혜 혜(惠)를 써서 방혜(芳惠)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조선시대의 표기에 방효(方孝)라 되어 있어 효자와 관계있는 설화가 있음직도 하나, 전하는 바가 없어 추정이 어렵다.
한편 일정치하에서 우리 말(부르는 말)의 지명을 일본관원들이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생기기도 하였음을 통례로 보아, 뱅여울이 방혜동으로 된 것 같기도 하다.

중리(中里)

중리는 방혜동·막곡과 함께하는 마을로, 1950년대에 막곡에서 분리되면서 세마을의 가운데라 하여 중리라 부르게 되었다.

상가재(上佳才)

가재리는 상·하로 나뉘어 있고 경계는 산세로 구분되며, 부락산의 줄기가 서남으로 내려 그 끝을 보이는 곳으로서, 형태가 가재(민물 갑각어류)를 닮았다고 보아 마을명을 가재리라 하였고, 한자로 가재(佳才)라 표현하였다.
상가재는 광주이씨(光州李氏) 정착 35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마을이며, 풍년나무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서 주변에 조성된 공단으로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마을이다.

하가재(下佳才)

하가재는 속칭 ‘가재울’로 불리며, 막곡과 같이 수성최씨(隋城崔氏)가 대임(大任)으로 예전에는 감나무가 많아 ‘감나무골’로 불렸던 곳과 사당(社堂:慶州李氏)이 있어 ‘사당재’라 불리웠던 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감나무골은 폐쇄되고 사당골은 막곡에 포함되어 있다.

장안(長安)

장안은 조선시대에 삼남대로(三南大路)가 동(東)으로 지나고, 동막(東幕)으로 넘는 작은 흰치재를 통하여, 삼남대로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있어 비교적 문물의 교역이 활발하던 곳으로서, 130여년전에는 시장이 있던 거리가 있었다하여 통상 ‘장안말’로 불렸는데, 한자로 표기할 때 길 장(長)을 써서 장안(長安)이라 하였고, 안(安)은 이 마을이 연안차씨(延安車氏) 집성촌이기 때문에 따서 쓴 것이 아닐까 한다.
‘장안말’을 우리말로 하면 장터 안 마을이란 의미가 되어 지명유래로 볼 때 타당성이 있고, ‘長安’은 한자로 쓰기 위한 의미만 지닌다 볼 것이다.
장안리는 주로 연안차씨·광주이씨·나주정씨 등이 대임(大任)으로 내려오다가 차씨문중(車氏門中)이 크게 자리하여 오늘에 이르는 마을이다.
500여년전 방혜동 경주이씨들이 한 때 정착하다 방혜로 옮겨갔다는 장안리에는 고려말 충신인 두문동(杜門洞) 72절개인의 한 분 인 문사공 차원경(車元頃)과 그 후손들이 머무는 선영(先營)이 자리하였으나, 개발사업으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옛 모습은 잃어가고 있다.

칠원(七院)

칠원은 수촌·신촌과 더불어 칠원리라 불렸고, 예전에는 갈원(葛院)이라 하였는데 이는 칡이 많이 나는 곳이란 뜻이며, 조선시대의 삼남대로가 지나면서 역원(驛院)이 있어 상업이 발달하였던 곳이라 한다.
통상 조선말기쯤 왕이 삼남대로상의 각 고을 순례시 갈원에서 일박하였는데, 병이나 그 원인을 따져보니 칡으로 인했다고 하여, 갈원을 칠원으로 바꿔쓰도록 지시함으로서 칠원이 되었다고 한다. 1759년 발행된 여지도서상의 갈원리는 인구 120명의 70여호가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었다.

수촌(水村)

수촌은 송탄시의 남·동쪽 끝마을로 평택~안성쪽을 흐르는 통복천 상류로 통하는 수로가 있어, 매년 풍부한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마을로 수촌이라 하였다는데, 매년 정월이면 통복천에 우물(井)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신촌(新村)

신촌은 칠원과 수촌 사이의 마을이며, 새로 만들어진 곳이라 하여 신촌이라 했다는데, 수촌마을 보다 그 연원은 짧으나 역시 조선중기 이후 형성된 전형적 농촌마을이었다.

원도일(原道日)

원도일은 여방면 소속으로 여좌울이라 하였던 동네로, 도일리 본래 마을이라 하여 원도일이라 했다.
삼남대로 칠원리, 원곡 갈래길에 위치하여 감주거리라는 주막들이 형성되기도 했다는 원도일은, 오랜 연원에 비해 토성이 없이 20여호의 주민들이 촌락을 이루는 곳이다.

하리(下里)

도일리 초입에서 시작되는 마을로 원주원씨 집성촌락이다. 예부터 여방면 99골짜기 중 하리마을은 큰 여의(如意)실·작은 여의실, 원당골(院當谷), 대마거리(대마거리), 갑골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골짜기 마다 한두집 또는 여러호로 취락을 이룬다.
하리는 도일천을 중심으로 아래쪽에 위치하여 하리라 하였고, 덕암산 좌측 산세에 해당되며 산세가 장군의 툭 같다는 투구봉, 말이 기다린다는 대마거리, 칼을 갈았다는 숫돌고개 등 도일리 일대 중 하리는 장군과 연관된 지명이 많으며, 하리 입구에는 삼남대로가 통과하여 성황당이 있던 자리엔 수령 4~5백년의 엄나무가 성황나무로 서있고, 춘향전에 ‘이도령과 방자가 만났다’는 주막거리가 있었다. 하리는 상리·내리와 함께 원씨 600년 세거지로 유구함을 자랑한다.

내리(內里)

내리는 도일리의 중간위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리라 하며, 내리의 구성은 골짜기마다 이름 붙여 운더말·새말·안말·능말·갓골·깊은골 등으로서, 능말은 원주 원씨 선조의 묘가 있는 곳이요, 안말은 안쪽 골짜기로 울음밭이라 하는 원균장군 집터가 있었던 곳이며, 새말은 새로생긴 마을, 갓골은 갓의 형태를 한 마을, 우비(右碑)라 하여 원주원씨 세거비(世居碑)가 서있는 곳이란 뜻으로 내리 곳곳의 명칭이 곧 그 유래를 뜻한다.
내리에는 내리저수지와 원균장군묘역(경기도 시도기념물 제57호)이 있으며, 하리와 경계에 원균장군 사당이 서 있다.

상리(上里)

상리는 도일리에서 제일 윗동네로서 사창골(司倉谷)·양성골(陽城谷)·배나무골·샛골(間谷)·독치골(감나무골)·안골·산막골(山幕谷)·정골(鼎谷) 등이 있으며, 그 어원상 사창골은 조선 영조때의 자료인 여지도서(1759년)에 여방면 사창리로 50여호가 있었다고 하며, 마을 앞에 큰 강이 있고 나루터가 만들어져 있어 주막이 형성되고 뱃사공이 머물러 살았다는데, 창고가 있는 마을이란 의미로 사창이라 했다. 덕암산을 뒤로 두어 안골에서 오르는 길에 산신각이 있으며, 정골에는 용광로터가 있어 솥을 구워냈다는 골짜기로 정문(旌門)이 2곳에 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