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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평택시 인구2019년10월말 기준

읍면동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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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 면적 인구 세대수
12통 77반 1.59㎢ 7,435명 (남 3,728명, 여 3,707명) 4,132세대

주민자치센터 시설

  • 지하 : 식당, 창고
  • 1층 : 민원실
  • 2층 : 소회의실, 정보통신실
  • 3층 : 대회의실, 체력단련실
  • 4층 : 주민자치 프로그램실, 신장1,2동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보기[클릭]

공공복지시설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신장1동의 조직도는 신장1동 하위로  주무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노인교통수당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이륜차 등록

신장1동 유래

시 서북편에 위치하여 진위천 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사가 극히 완만한 낮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말기에는 진위군 송장면·일탄면 지역이었으며, 1981년 송탄면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송탄시 신장동으로 되었다가, 1995년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을 통합하면서 평택시 송탄출장소 신장동으로 개편되었다. 법정동인 신장동은 행정동 신장1동이며 미공군기지를 서편에 두고 상가 및 주택 밀집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제역, 남산터, 목천, 구장터 4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신장1동 옛마을 이름
제역(除役洞), 젯골

제역동은 조선시대 농민들이 국가에 부담하는 역(役)을 면제해주고 대신 문정공 최수성의 묘와 사당을 관리하게 했던 마을이다. 미군부대가 들어오고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작은 농촌이었던 이 마을도 도시화되었다.

남산터(南山―), 지골, 짓골

남산터는 16세기 중엽 최수성이라는 인물이 남산이라는 야트막한 산기슭에 원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칩거하였던 곳이다. 최수성은 당시 조광조, 김정, 최자반 등 당대의 유명 인물들과 교우하면서 학문을 닦았으나 정치입문에 뜻을 접고 스스로 북해거인 또는 경포 산인이라 하여 원정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의 칩거는 "산수에 묻혀 사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삶"이었다. 조광조의 개혁 당시 원정은 개혁세력의 결집장소였다. 그와 같은 역할 때문에 남곤, 최세절 같은 훈구세력의 미움을 샀다. 결국 기묘사화로 조광조, 김정 등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뒤이어 일어난 신사무옥으로 최수성도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최수성의 죽음은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사면 복권되었으며, 명분과 실력에서 앞섰던 사림파가 실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림파의 실권장악은 기묘명현의 명예회복을 의미했다. 후에 사림파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율곡이이의 건의에 따라 문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좌의정에 추종된다. 지금은 미군부대에게 내어준 남산은 이렇듯 평택지역에서 정신사적으로 귀한 산이었다. 남산터 마을은 땅이 질어서 "지골, 짓골"이라고도 불렸다.

목천동(木川洞), 나무내

목천(木川)은 ‘나무내’라고도 불렸다. ‘나무내’는 글자 그대로 ‘나무가 떠내려 오는 냇가 마을’ 이라는 뜻이다. 이 마을 옆에는 작은 내가 흐르는데, 장마철 냇가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떠내려 오곤 했다. 땔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떠내려 오는 나무는 귀한 재산이었다.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건져 햇볕에 말려 땔감으로 썼다.

구장터(舊場―)

구장터는 옛 장터가 있던 마을이다. 19세기 말 일탄면 시절에는 면(面)의 중심이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마을의 모양과 골목길의 형태 그리고 길 좌우로 늘어선 집들의 모양이 옛 장터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장터는 육로나 수로 교통과 관련이 깊다. 구장터 마을 옆에는 진위천이 흐르고 냇가에는 나루가 있었다. 아산만 방조제가 준공되기 전에는 조수(潮水)가 구장터 옆을 지나 오산천을 타고 갈곶리 부근까지 올라갔다. 물길이 열린 곳으로 소금과 새우젓을 실은 배들이 왕래하였고 각종 물화가 교역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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