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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중심 새로운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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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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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 면적 인구 세대수
20통 107반 5.46㎢ 11,171명 (남 7,708명, 여 5,463명) 5,528세대

교육시설

유치원 3개교, 초등학교 2개교 ☞ 세부현황[클릭]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원평동의 조직도는 원평동 하위로  주무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호주승계) 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노인교통수당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원평동 유래

평택의 발상지인 원평동은 조선조에는 진위현 병파면 통복개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진위군 병남면 평택리. 이후 1938년 7월 27일 평택군 평택읍으로 개칭되면서 군청사를 두어 주변 상거래가 성행했던 곳이었으나 6.25사변으로 시가지가 파괴되면서 그 기능을 잃고 철도 동쪽지역으로 신시가지(지금의 신평동)가 조성되면서 주거중심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4년 7월 평택군 평택읍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어 12개 리(里)를 관장해오다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평택동과 통복동 신대동 군문동을 관할하면서 이곳을 서부동이라 했으나 옛 전통과 유래를 되찾고 평택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을 찾기 위한 대다수 주민의 여망을 수렴해 1992년 6월부터 원평동으로 개칭하였다.

본정통(本町通)

일제때 평택의 번화가를 뜻하는 말(일본명 : 혼마찌)로 생활 필수품을 파는 등 상가가 많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대동연탄~R.T.O(철도수송사무실)까지의 거리로 한국전란 이후 시가지가 철도 건너편(지금의 신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싸전거리(米廛)

일제때 호황을 누리던 거리를 말하는데 평택평야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집결지였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유명한 곡물 집결시장이었고 쇠전거리(牛市場)는 일제때 경기 남부지역에서는 제일 큰 동물시장으로 지금의 평택초등학교 위치를 가리키며 이와함께 진전(陳田)거리에는 아산만과 만호리에서 잡은 생선을 팔던 곳으로 지금의 대동연탄 자리를 말한다.

용잔(用地안)

일제때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철도용지로 수용된 후 쓰고 남은 땅을 일컬어 용잔이라 불렀다.

통복개(通伏갯)

평택호와 아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통복 갯벌에 동네가 생겼다하여 통복개로 불렀으며 옛적에는 통할 통(通)자와 제방을 뜻하는 막을 복()자를 사용해 왔으나 이후 사용 편리를 위해 복()자를 복(伏)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높은들(高坪)

평야의 구릉지에 마을이 있다하여 불렀고 지금의 15통에 위치한 지역을 말하며 화촌(華村)마을에는 예전에 훼나무가 많아 꽃밭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화촌이라 했고 신덕포(新德浦)마을은 평택호 방조제 공사가 완공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여기까지 들어와 배가 닿던 곳으로 조기배 새우젓배 등이 들어와 어물(魚物)을 거래하던 포구로 알려져 있다.

군문포(軍門浦)

1894년 동학혁명때 한국의지배권을 둘러싸고 청나라 군사와 일본 군사가 진출 충돌하던 과정에 청나라 군사가 주둔하여 관문(關門)을 이루었다하여 지어진 지명이며 샛개(間浦)마을은 군문포와 황룡동 사이에 위치하였다하여 샛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삽다리(橋)

바다쪽을 향해 뽀족하게 내민 반도형의 지형을 뜻하는 내용으로 땅이름 곶(串)자에 다리를 놓았다하여 삽다리 또는 삽교라고 부르며 고잔(高棧)마을은 곶(串)안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지명으로 「고잔마을」로 변천되었으며 새터(新垈)마을은 고잔마을이 생긴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하여 새터라 부르게 되었다.

원평동

평택의 발상지라는 동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이 충만하고 자연부락이 산재되어 있어 아직도 농촌의 정서가 살아 있으며 '05.1.20전철개통과 '09.4.민자역사 건립으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평택역세권 및 고평지구 개발등 개발수요 증가 및 안성천·통복천을 활용한 체육공원 및 생태공원등 친수공간 조성등 제2의 도약기반 구축으로 지역경제활성화 및 동민의 삶의질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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