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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동

일반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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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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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현황을 면적, 인구, 세대수를 상세히 안내하는 표입니다.
행정구역 면적 인구 세대수
46통 359반 15.62㎢ 71,933명 (남 36,421명, 여 35,512명) 28,925세대

주민자치센터 시설

  • 1층 : 민원실
  • 2층 : 주민자치프로그램실, 동장실, 소회의실
  • 3층 : 대회의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보기[클릭]

교육시설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  ☞ 세부현황[클릭]

공공복지시설

  • 경로당 34개소 ☞ 세부현황[클릭]
  • 사회복지시설 4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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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시설 주소 및 연락처 안내 표입니다.
    명칭 주소 연락처
    비전스쿨지역아동센터 평택시 평택5로 258-4 (비전동) (우17881) 전화 031-652-8297
    남부노인복지회관 평택시 중앙1로56번길 25 (비전동) (우17895) 전화 031-651-3677
    평택노인복지센터 평택시 비전3로 15 (비전동) (우17853) 전화 031-647-3290

행정복지센터 행정조직

비전1동의 조직도는 비전1동 하위로  행정민원팀, 생활지원팀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센터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감증명서 발급 신청(대리)
  • 인감(개인) 신고 (본인)
  • 인감신고 (재외국민)
  •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초본 발급
  • 주민등록 재등록
  • 주민등록 분실신고 및 재발급
  • 주민등록 정정(말소) 신고
  • 출생신고
  • 사망신고
  • 전입신고
  • 주택임대차계약서 확정일자 부여
  • 납세완납증명서 (지방세납세증명)
  • 지방세 미과세 증명
  • 자동차 시세완납 증명
  • 재산세 과세증명 (세목별 과세증명)
  • 민방위 교육
  • 기초연금대상자 신청
  • 국민기초 생활보장 수급자 신청
  • 장애인 등록 신청
  • 공공근로신청
  • 농지원부 작성 등본발급업무
  • 건축물 멸실신고

비전1동 유래

비전1동은 비전동, 동삭동, 죽백동, 청룡동, 월곡동 등 5개 법정동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동장 관할구역 명칭이다.

비전동
비전(碑前)

조선시대 진위현 병파면에 속한 마을이었다. 조선 후기 큰 길가에 비석이 있어 ‘비석거리’ 또는 ‘비전碑前’이라고 부르면서 유래되었으며, 산직촌(이곡), 하신작로, 재랭이(당골)이라는 옛마을 이름이 있다.

산직촌(山直村)

덕동산 뒤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남쪽에 위치한 어인남 마을에서 북동쪽에 있는 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 산뒤말이라 하였다. 산뒤말을 한자로 음차(音借)하여 산직촌(山直村)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일합병 이후 일본인이 야산을 개간하여 배나무 과수원이 되어 배가 마을의 주산물이 되면서 이곡(梨谷)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하신작로

1914년 이후 평택 안성간 신작로가 개통되면서 신작로 변에 위치하였다고 부른 마을 이름인 것으로 전해온다. 도로 교통 지명으로 도로에 접한 마을이다.

재랭이(紫蘭)

자란산(紫蘭山) 기슭에 있는 마을로 원추리과의 자주빛 난초가 많이 자생하여 자란산(紫蘭山)이 붙었으며 자란산의 자란(紫蘭)을 따서 마을 이름을 자란(紫蘭)이라 불렀다. 이후 자란이 변음하여 “재랭이”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옛날 마을 어귀에 13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어 전해 내려오는 풍습에 따라 매년 정월(음)14일에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평택시 문화원 주관으로 지내고 있다.

당골(堂谷)

재랭이를 당골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자란산 산저에 부채 모양의 가죽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 밑에 서낭당이 있다하여 당골(堂谷)이라고 하였다.

동삭동(東朔洞)

동삭동은 조선시대에 진위현 병파면 서재(西才)와 여방면(餘方面) 모산골(毛山) 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에 진위군 여방면 동삭리(東朔里)가 되었다. 평택읍 때에는 동삭1리(上西才)·동삭2리(下西才)·동삭3리(毛山谷)로 되었고 1986년 1월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1동의 13통(上西才)·12통(下西才)·14통(毛山谷)으로 부르게 되었다.

상서재(上西才)

하서재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상서재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마을에는 조선 태종(太宗) 때에 덕종군(德泉君)의 후예가 낙향하여 서당을 짓고 서재가 많이 있는 곳이라고 서재(書齋)마을로 불렀는데 해가 가면서 서재(書齋)가 서재(西才)로 간단한 한자 취음하여 바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서재(下西才)

상서재 아래 마을이라고 하여 하서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산골(毛山谷)

원래 억새풀(茅草)이 많아서 모산골(茅山谷)이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모산(毛山)으로 한자를 취음하여 바뀐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억새풀은 모사(茅舍)로 짓고 농우 우장(도랭이)을 만들던 풀이다. 곡(谷)은 침식지형의 지명이며 골 꼴 둥이 이에 속한다.

죽백동(竹柏洞)

죽백동은 조선시대에 양성현(陽城縣) 반곡면(盤谷面)에 속하였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에 원당면(元堂面)과 반곡면(盤谷面)이 통합할 때 안성군 원곡면에 속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에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평택군 평택읍에 편입되어 죽백1리(방아다리)·죽백2리(內村)·죽백3리(원죽백)로 되었고 1986년 1월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1동의 15통(방아다리)·16통(내촌)·17통(원죽백)·18통(죽백)이 되었다.

방아다리(砧橋里)

내촌(內村)에서 이 마을로 가는 곳에 내(川)가 있어 내의 흐르는 모양이 디딜방아 모양으로 보이는 곳에 다리를 놓았다고 방아다리(침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 설(設)에는 방아 공이로 다리를 놓았다고 방아다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안말(內村)

죽백(竹柏) 마을과 방아다리 두 마을사이 안쪽에 있다 하여 안말(內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안(內) 말(村)을 한자 취음하여 내촌(內村)으로 된 것이다.

죽백마을(竹柏)

산에 칡이 많이 자생하여 우후 죽순처럼 칡이 많이 난다하여 대죽(竹)자와 칡백(柏)자를 따서 죽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청룡동(靑龍洞)

조선시대에 양성현(陽城縣) 반곡면(盤谷面)에 속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당면(元堂面)과 반곡면(盤谷面)이 통폐합하여 안성군 원곡면에 편입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 행정 구역 조정으로 평택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1동 19통(청용)이 되었다.

청룡(淸龍)

백운산(白雲山)에서 여러 갈래로 산고울이 뻗어 내려와 있고 산이 울창하여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 하여 청룡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전해 오고 있다.
※ 청용마을 동쪽에 우뚝 솟은 백운산(白雲山)에는 옛적부터 명승지로 불려 내려오는 신선봉(神仙逢)이 있고 무안사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고승과 사신들의 심방(尋訪)이 잦았던 유명한 사찰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월곡동(月谷洞)

조선시대에 양성현(陽城縣) 반곡면(盤谷面)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당면(元堂面)과 반곡면(盤谷面)이 통합하여 안성군 원곡면(元谷面)의 지역이었고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평택군 평택읍(平澤邑)에 편입되었다. 1986년 1월 1일 평택읍이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1동 20통(舊 月球里) 21통 (月谷)이 되었다.

달곡(月谷)

마을은 아름다운 둥근 달을 볼 수 있는 마을이라 월곡(月谷) 또는 원구(月球) 라고도 부른다.

관동 (官洞) 또는 귀골(貴谷)

마을 서남쪽에 옥터골 행교동 등 옛 터전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옛 관아(官衙)가 있었더 곳으로 짐작이 되며 그래서 관동(官洞)·귀골(貴谷)·굿구리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 옛날 옛 터전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각종 거목이 울창하며 특히 천년이나 묵은 괴목(傀木)이 있다. 이 괴목은 나라의 길흉사(吉兇事)가 있을 때 나무가 운다고 한다. 그래서 6.25사변 때와 3.1운동 때에도 이 나무가 울었다고 한다.

옥터골(獄垈谷)

그 옛날에 옥(獄)터가 있었다고 옥터골(獄垈谷)이라 부르고 있다. 지금은 밭이 되어 있으나 밭을 일구던 옛 기와장가 그릇 조각이 출토된다고 한다.

향교동(鄕校洞)

지금은 농경지이라 옛날 향교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그 흔적이 전혀 없고 이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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